분재입문 New Start with zero

2010. 11. 5. 08:53기타/기억하고 싶은글

분재입문

New Start with zero

 

 

 : 오 영택

 

분재에 갓 입문하였거나, 1년이 채 지나지 않았거나, 또는 입문한 기간이 꽤 되었을지라도 체계적인 학습과 훈련을 받아 본 적이 없다면 모두 분재 초보자들이다. 학습과 경험 없이 초보를 벗어나는 방법은 세상에 없다. ‘초보 탈출은 자료를 참고하여 스스로 이룰 수도 있으나 일정한 수준의 안목과 강의 경험을 갖춘 이에게 배우는 것이 효과적이다.

 

초보자들을 분재로 안내하는 일은 물론 대가와 고수들의 몫이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런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다. 대가, 고수들 중에 강의를 병행하는 경우도 있으나, 대체로 커리큘럼과 교수법 상의 문제로 학습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입문 4년에 불과한 필자가 위험을 무릅쓰고 분재 입문을 안내하려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명문대학 1년생들이 고3들에게 유능한 과외교사가 될 수 있듯이, 필자 역시 이제 갓 초보를 벗어났기에 초보를 벗어나는 법에 관한 한 유능한 안내인 노릇 정도는 가능하리라 본다.  

 

분재입문이 온전하려면 또는 단시간에 초보를 벗어나려면 우선 다음의 내용들을 개괄해야 한다.

 

 

분재란 무엇인가?    

 

분재 입문은 분재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에서 시작된다. 그 의문에 대하여 명쾌한 해답을 얻어야만 취미이건, 직업이건 분재를 계속할 수 있다. 분재(盆栽) 분에 심긴 나무를 뜻한다. 그러나 분에 심겼다고 모두 분재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분에 심었으되 철사걸이, 가지 자르기(전정), 분생활 적응 등 일정 기간동안 관리된 나무라야 비로소 분재라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일정기간 관리 되었다 해도 아직은 소재일 뿐, 참다운 분재가 되기 위해서는 분재미라는 또다른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분재미의 조건 

 

분재는 본디 대자연을 축경하려는 인간의 욕망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빼어난 모습을 갖춘 노수거목은 늘 분재의 지향이며 표상이었다. 분재를 하려면 노수(老樹)와 거목(巨木)을 구별하여 서로가 어떤 아름다움으로 사람을 감동시키는지 알아야 한다. 노수의 매력으로는 단연 늙어보임(고태감)’이 으뜸이다. 반면에 거목의 매력은 크기에 있으니, 이는 굵음이나 높음, 넓게 펼쳐짐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이처럼 한 나무가 분재가 되기 위해서는 꽤나 까다로운 조건들을 충족시켜야 한다. 이 조건들을 총칭하여 분재미라 하며 그 속에 분재의 본질이 숨어있다.

 

 사실 분재를 취미로 삼는 이들이 분재라 하여 키우는 나무들 중 상당수는 분재가 아니라 여전히 나무에 불과하다. 뼈아픈 이야기지만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분재에 입문하려면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잊는 순간 낭패보기 십상이다.

 

규범과 창의 

 

겉으로 드러난 나무의 모습을 수형이라고 한다. 분재는 수형을 완성하는 과정에 그 묘미가 있는 문화 행동이며 예술 행위이다. 수형은 많은 구성 요소들로 이루어지며, 구성 요소의 조합은 일정한 형식을 갖추어야 한다. 분재인들은 이를 규범이라 부른다. 규범은 응용의 범위와 강도에 따라 다시 기준, 규칙 및 원칙으로 세분된다. 기준은 문자 그대로 기준일 뿐 벗어난다 해서 흠결이 되지 않는다. 규칙은 사람이 정했으니 일단은 지키는 쪽에서 고려하되 지키지 않는다 해서 욕먹을 일도 아니다. 그러나 원칙은 반드시 지켜야할 덕목이다.

 

나무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제반 기준과, 규칙과 원칙을 모두 엄격히 지킨다면 수형 또한 규범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한 둘의 기준을 벗어났거나 규칙을 지키지 않았을 경우, 수형은 잘못될 가능성과 동시에 창의적일 가능성을 갖는다. 전통적, 보수적 관점에서는 여전히 규범적 수형을 작품 분재의 전형으로 중시한다. 그러나 분재의 예술성을 강조하는 관점에서는 창의적 수형을 장려하고 확장해야 할 필요성를 보다 강조한다.

 

분재 수형은 규범과 창의를 함께 아우를 수 있음을 인지하되 초보와 입문 시절의 학습과 경험에서는 규범을 숙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배양 및 관리

 

나무는 햇빛, 바람, , 공기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 빵만으로살 수 없듯이 분재 또한 이들 자연의 요소만으로 제격을 유지하기는 매우 어렵다. 분재는 건강함과 더불어 분재미를 갖추어야 하므로 나무를 분재로 완성하기 위해서는 분재 기술이 필요하다. 이 영역 속에는 나무에 직, 간접적으로 행하는 모든 행위들이 포함된다. 전정, 철사걸이, 분갈이, 물과 거름주기, 번식(파종/삽목/취목), 상처 치료, 조각 등은 대표적인 분재 기술들이다. 이 기술들은 배우고 아는 데 그쳐서는 소용이 없다.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분재 관리란 관찰, 진단, 처방으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여름철 오후가 되면 물이 말라야 정상이다. 물이 마르지 않는 화분은 나무에 이상이 생겼다는 징후다. 5월 중순이면 잎은 초록이 진해야 정상이다. 황색이나나 적색으로 변했다면 과습, 과비, 일조량 과다 등을 의심해야 한다. 잎은 생기가 돌고 형태가 단정해야 정상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일조량 부족, 통풍 장애, , 해충이 침입했을 가능성이 높다. 방제를 거르지 않았는지 확인해야 한다.

 

분재정신

 

 분재 입문 과정에서 간과해서 안되는 부분이 바로 분재정신이다. 왜 분재에 입문하려는가? 스스로 질문하고 스스로 명확한 답을 찾아야만 분재정신의 근간을 형성해 나갈 수 있다. 어디에서건 정신없는 사람이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정신없이 분재를 하다보면 죽도 밥도 아닌 결과에 실망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그냥 좋아서 분재를 취미로 삼았다고 말한다.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노력과 성찰이 부족한 답이다. 분재정신을 스스로 찾아내야만  자신의 분재관을 형성할 수 있다. 작품을 창작하고 감상하는 기준은 분재관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하니 그냥 좋아서 하더라도 무엇이 좋은지는 분명해야 한다.

 

취미라면 우선은 분재를 통한 즐거움을 꿈꿀 수 있다. 욕심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이 즐거움을 추구하면 나무를 생각하고 나무를 바라보는 순간마다, 또한 작업하는 일거수 일투족이 즐겁다. ‘창의성을 발현하는 작품 분재의 창작을 목표한다면 규범을 철저히 익히고 수형의 구성 요소를 조합하는 방식과 기준을 깨달을 때까지 많은 시간의 투자가 필요하다. 

 

분재인들은 각자의 분재정신과 분재관에 따라 분재하는 방식과 태도가 서로 다르다. 무엇이 옳고 어느 쪽이 좋다는 식은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다만, 분재는 살아있는 생명체를 그 대상으로 삼고, 그 삶에 사람이 개입함으로써 이루어지는 행위라는 점만은 잊지 말아야 한다.  

 

분재의 예술성

 

분재의 독자적 존재 가치 분재의 예술성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아름다움을 비롯하여 고태감, 독창성, 희소성, 생명의 신비, 조형성, 상징성 등 어느 한 가지 미적 특질만으로도 분재는 예술성을 갖는 작품이 될 수 있다. 전통적이고 규범적인 미적 특질에 얽매이지 말라. 전통과 규범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이 미적 특질을 찾아내고 표출할 때 분재의 예술성은 고양된다.  

 

분재인들이 흔히 말하는 눈뜸 또는 안목이란 분재의 독자적 존재가치에 대한 판단력을 일컫는다. 규범을 온전히 이해함은 물론 규범을 훌쩍 벗어난 경지까지 알아, 볼 수 있도록 감성과 안목을 연마해야 한다.

 

분재 기술을 먼저 숙련한 후에 분재미 또는 예술성을 지향한다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기술은 수형 창작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수형은 분재미와 예술성을 함축하는 분재행위의 궁극적 완성이며 목적이다. 학습 과정에서 수형을 외면한 채 기술에 집착한다면 이는 두서(頭緖)없고’, ‘본말이 전도된 것으로 그 효과를 크게 기대할 수 없다. 외람되지만 목적없이 수단에만 능숙하면 분재 기술자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수형을 도외시한 분재란 애당초 어불성설이다. 입문 시점부터 수형이 함축해야 할 분재미와 분재의 예술성에 관심을 갖고 안목을 형성해야 한다. 안목이 탄탄할수록 연관된 분재 기술을 효율적으로 습득할 수 있다.

 

분재의 역사

 

 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것을 안다는 뜻의 온고지신(溫故)’, 나아가 옛 것에 토대를 두되 그것을 변화시킬 줄 알고, 새 것을 만들어 가되 근본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뜻의 법고창신(法古創新)’은 식상하기는 해도 역사를 공부하는 불변의 목적이다.

 

입시를 위한 공부가 아닌 이상 우리가 분재 역사의 연표 따위를 외울 필요는 없다. 시기별로 존재해온 분재인 및 작품의 연혁과 기록을 통해 그들의 분재정신과 분재관, 분재 예술의 변천과 그 계기를 읽어내야 한다. 더불어 일본, 서양과 달리 한국 분재와 한국 분재인들이 역사 인식에 있어 얼마나 취약했는지 알아 채는 것도  큰 공부가 된다.

 

한 분재인의 역사는 입문에서 시작된다. 그의 분재 생활을 통틀면 한 개인의 분재사가 된다.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자신의 분재사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라도 분재의 역사를 훑어 읽을 필요는 매우 높다.   

 

 

2008. 6. 7.